짱
‘짱’ 모시는 ‘일진’… 선생님보다 세다
조선일보 2004. 02. 11
“알리면 더 큰 보복” 가족에게도 말 못 해 / 폭력경험 19%… 갈수록 은밀․흉포화
일반 학생들도 ‘왕따’ 등 확산 추세… 학교선 소극적 “공개해 봐야 망신”
개학한 지 며칠 안 되는 지난 주말, 회사원 김 모(47)씨는 서울 D중학교 1학년에 다니는 딸 지연(가명․14)의 왼쪽 눈이 퉁퉁 부어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눈동자에 출혈이 있고 온몸이 멍투성이였다. 달래고 다그치기를 몇 시간. 지연이는 같은 학교 한 학년 선배 8명에게 학교 근처의 한 노래방으로 끌려가 돈을 빼앗기고 주먹과 발로 수십 차례 얻어맞았다며 울먹였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선배들의 협박에 1년 내내 용돈을 상납하고, 폭행을 당해도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었다는 딸의 말을 듣고 김 씨는 가슴이 무너졌다.
가해 학생들은 징계위원회에 넘겨져 ‘특별교육’을 받고 있다는 학교 측의 설명이 있었지만, 지연이는 언제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며 안절부절못한다..
학교에 안 가겠다며 헛구역질까지 하는 아이를 보며 김 씨는“아이를 학교에 맡긴 것 자체가 후회된다” 고 했다.
점점 더 위험해지는 학교. 개학과 함께 신학기를 앞둔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불안하다.
과거와 달리 일부 비행청소년 외에 일반 학생들 간에도 ‘왕따’ 등이 성행하고 있고, 학교 폭력은 점점 은밀하고 흉포화 해지는 추세다.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지난해 4월부터 2개월간 전국 94개 초․ 중․ 고생 1만 4638명을 상대로 한 ‘2003학년도 학교폭력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9.1%가 ‘폭력경험이 있다’ 고 대답, 같은 문항에 대한 2002년도 하반기 응답자 비율(13.8%)보다 5.3% 증가했다.
집단따돌림(왕따) 경험도 2002년 하반기 5.5%에서 7.0%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는 그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에서 거의 무기력한 상태다. 학교 폭력을 학교에 알렸다가 오히려 ‘일진’ 에게 낭패를 당한다는 의식은 피해 학생들 사이에 이미 팽배해 있다. ‘일진’ 은 학생들의 속어로, 한 학급이나 학교전체 단위로 가장 싸움을 잘하는 학생인 이른바 ‘짱’을 중심으로 모여 다니는 집단을 지칭한다.
11일 오후 서울 성북구 S초등학교에서 만난 김 모(11)군은 “우리 학교에는 각 반마다 ‘짱’이 있고, 짱을 ‘모시는’ 애들이 있다”며 ‘짱을 ’모시는‘ 아이들이 한 아이를 더럽다며 매일 때리지만 선생님이 몇 번 벌을 줘도 ’짱‘이 더 세기 때문에 선생님 말은 듣지 않는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경기도 K중학교에 다니는 정모(14)양의 부모는 딸이 선배들에게 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학교 측에 거세게 항의했다.
학교 측은 가해 학생 중 정도가 심한 학생을 골라 1주일 정도의 ‘사회봉사’를 시켰을 뿐이었다.
그 후 이들은 달려오는 버스에 등을 떠미는 등 새로운 형태의 폭력으로 정양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정양의 부모는 “괜히 학교에 말해서 일만 더 키웠다” 고 후회했다.
학교폭력대책협의회 송연숙 사무국장은 “아이가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들이 자주 묻는 것 중의 하나가 ‘선생님께 말해도 되나’는 것일 정도”라고 말했다.
2002년 청소년폭력예방재단과 고려대학교가 전국 16개 시․도 초․중․고생 4029명을 상대로 실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학생들은 신체적 폭력에 대해 피해사실을 알린 대상으로 친구(30.9%), 알리지 않음(29.5%), 가족(28.5%), 교사(5.3%)의 순서로 꼽았다. 문제해결을 위해 교사를 찾는 학생이 10명 중 1명도 채 되지 않는 것이다.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계의 한 관계자도 “상당수의 학교 관계자와 교사들이 폭행 사례를 공개해 봐야 학교 망신이 될 뿐이라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신고하지 않는다” 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