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
미국인 지문채취 맞대응 브라질 국민들 “잘한다”
중앙일보 2004. 01. 13
브라질이 미국에 싸움을 걸었다.
미국이 지난 5일부터 테러방지를 위해 유럽연합(EU)․일본 등 27개국 국민을 제외한 외국인들이 입국할 때 지문채취와 사진촬영을 시작하자 곧이어 브라질도 한 연방판사의 명령으로 자국에 들어오는 미국인에 대해 같은 조치를 취했다.
정부의 당당한 대응에 브라질 국민은 “잘한다”며 박수를 보냈다. 힘을 얻은 브라질 정부는 곧 미국인에 대한 지문채취 정책을 공식화할 방침이다. 셀소 아모림 외무장관은 지난 주말 “미국의 안보가 중요하지만 일반 여행자들의 권리까지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당초 미 행정부는 브라질의 대응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브라질 공항에서 몇 시간씩 허비했다”는 불평이 미국인들로부터 쏟아지자 서둘러 대책마련에 나섰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지문채취와 사진촬영에 몇 초밖에 안 걸리지만 브라질은 최대 9시간씩이나 걸린다”며 불편한 심기를 털어놨다.
수치심을 유발시키는 검사방식도 문제다. 첨단 장비를 갖춘 미국과 달리 브라질은 검은색 잉크를 직접 손가락에 묻혀 찍고, 여권번호를 가슴에 대고 사진을 찍는 등 영락없는 ‘죄수들의 신분확인 과정’이다.
양국의 입장은 팽팽하다. 미국은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가 만나는 국경지역에 테러리스트들이 잠복할 소지가 많아 브라질 국민은 지문확인 작업을 거쳐야 한다” 는 입장이다. 브라질도 “미국인들이 아동 매매춘이나 야생동물 밀수를 벌일 가능성이 있다” 고 맞서고 있다.
양국 간 힘겨루기 탓에 애꿎은 브라질 여행업계만 ‘등 터진 새우’가 돼버렸다. 브라질을 찾는 미국인들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브라질 정부가 입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의 출범 1년을 앞두고 ‘FTAA 협상에서도 국가관계는 상호주의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남미의 종주국이라는 브라질의 자존심도 한몫했음직하다..
해결책이 곧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2일부터 이틀간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열리는 미주 정상회담에서 부시와 룰라 브라질 대통령이 만나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분석이다.